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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hwan 포스터
Indiestory

Songhwan

Repatriation

2004 149분 한국어 12
Wubly 평점 7.1 IMDb 평점 7.7

“간첩들과 함께 한 12년의 기록”

1992년 봄, 나(김동원)은 출소 후 갈 곳이 없던 비전향장기수 조창손, 김석형을 내가 살던 동네인 봉천동에 데려오는 일을 부탁받는다. 나는 그들이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라는 사실에 낯설음과 호기심을 갖고 첫 대면을 하게 된다. 한 동네에 살면서 난, 특히 정이 많은 조창손과 가까워지고 이들의 일상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게 된다. 하지만, 내 아이들을 손자처럼 귀여워하는 모습에 정을 느끼는 한편 야유회에서 거침없이 ‘김일성 찬가’를 부르는 모습에선 여전한 거부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얼마 후 조창손은 고문에 못 이겨 먼저 전향한 동료 진태윤, 김영식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 전향자들에게는 떳떳치 못한 자괴감이 깊게 배어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난 이들의 송환 운동에 도움이 되고자 장기수들의 북쪽 가족을 촬영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입국 절차가 무산되고 되려 허가 없이 영화 제작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데, 대신 이 사건을 계기로 장기수 할아버지들과 나의 친밀감은 두터워지게 된다. 1999년부터 본격적인 송환 운동이 시작되고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함께 송환 운동은 급물살을 탄다. 송환이 현실이 되자 남쪽이 고향인 장기수들, 옥중에서 전향을 하여 북으로 갈 요건이 안 되는 이들, 결혼을 발표하여 동료들의 비난을 받는 이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갈등 상황이 빚어진다. 송환을 앞두고 조창손은 30년 전 체포되었던 울산을 찾아가 죽은 동료의 넋을 달래고 그의 가족에게 전해 줄 흙 한 줌을 퍼 간다. 그리고, 비전향장기수 63명은 2000년 9월 2일 북으로 송환된다. 이제는 자료 화면들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그들. 나는 아직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그들을 만나러 갈 수 없고, 오랜 고문에 쇠하고 연세도 많은 그들 또한 더 이상 남측과 교류하지 못한 채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디서 볼까

스트리밍 중인 곳 없음

미국에서는 어떤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없고, 대여도 안 돼요.

내 평점

내 리뷰

Repatriation Collection에 속한 작품

총 2편

출연진

3명

Kim Dong-won 감독 · Ryu Mi-rye 각본

전 세계 흥행 수입 US$1.5만 · 미국 공개 2004년 1월 19일 · 제작 국가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전 세계 흥행 수입

US$14,795

제작

I

Indiestory

제작

P

P.U.R.N Production

제작

대한민국

제작 국가

언어

원제

송환

원어

한국어

작품 속 언어

한국어

공개일

대한민국 · 2003년 10월 30일

프리미어

미국 · 2004년 1월 19일

Sundance Film Festival

대한민국 · 2004년 3월 19일

극장 개봉

아르헨티나

2005년 3월 13일 · Mar del Plata Film Festival

오스트레일리아

2005년 2월 19일 · Adelaide Film Festival

일본

2006년 3월 4일 · 극장 개봉

체코

2004년 7월 8일 · Karlovy Vary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캐나다

2004년 9월 24일 · Vancouver International Film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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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정보는 TheTVDB에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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